선지식을 찾아서(현대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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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0-02-19 조회6,103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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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심 도문 큰스님(장수 죽림정사 조실)
법석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불보살의 화현이어서 곳곳에 불법이 비치지 않는 곳이 없다. 다만 중생의 눈이 어두워 밝은 자성의 빛을 볼 수 없고, 중생의 귀가 어두워 청량한 법의 소리를 듣지 못할 뿐이다. 우주법계가 다 법석인데 굳이 설법좌를 마련하는 것은, 선지식의 법력을 통해 자성의 빛과 법의 소리를 훈습하자는 간절함이 있기 때문이다.
도량도 절대공간이 아니다. 법을 설하는 선지식의 자비와 법을 구하는 중생의 염원이 있는 곳이 도량이다. 일체제불의 원력이 한 찰나에 응결하여 한 도량을 세운다. 부처님께서도 제석천의 요청에 풀 한 포기를 세우고 “이로써 도량 하나를 세웠다”고 하시지 않았던가. 어느 법석이든 설법사(說法師)가 있고 청중이 있어 청정한 깨침의 인연을 맺는 것이지만, 그 자리를 베푼 공덕도 무량하다. 법을 설하는 법사와 듣는 대중 그리고 법좌를 마련한 시주의 원력이 계합하여 무시무종의 공덕이 된다.
비가 내리다가 홀연히 개인 아침, 가을빛 찬란한 산색(山色)이 극락세계를 그려보게 하는 11월 8일. 이날은 울산 연화사 법당에서 개원3주년 기념법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덕윤 스님이 도심 포교의 원력을 바랑에 메고 찾아 와 아담한 법당을 마련하고 호계불교대학을 꾸려온 지 3년. 이날 법회는 포교 원력을 세운 덕윤 스님과 연화사 호계불교대학에서 함께 공부하며 불자의 길을 닦아 온 불자 모두에게 감격스러운 자리였다. 넉넉하지 않은 여건 속에 ‘과연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가졌던 스님과 불자들이 ‘이젠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부처님과 세상을 향해 회향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법회에 앞서 관세음보살님 점안의식도 봉행되어 감격과 환희심은 더욱 컸다.
“이렇게 훌륭한 원력으로 지난 3년 동안 법회와 불교대학을 잘 이끌어 오시고 오늘 관세음보살님을 모시고 점안가지 하였으니, 이로써 더 이상 큰 법문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 법사의 법문은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보다 더 친절하게 도량과 법석의 거룩함을 찬탄할 수 있을까? 도문(道文 74) 대종사(大宗師)는 법회에 동참한 불자들에게 “연화사 주지 덕윤 스님의 포교원력과 호계불교대학에서 불법을 배우고 수행하는 불자님들의 원력이 둘이 아니어서 오늘 이렇게 뜻 깊은 법회를 열게 되었으니, 지금보다 더 큰 원력으로 공부와 전법 수행에 매진하여 한 불자가 여섯 사람을 포교하고 25명에게 법을 전하고 33명에게 깨침의 소식을 전하라”고 주문했다.
대종사께서 법석에 오르시어 주장자를 곧바로 세우고 잠시 침묵을 하시니 법석이 숙연해졌다. 그 고요를 깨치며 대종사는 그윽한 게송을 읊고 힘찬 사자후를 토해냈다.
약수습정념(若修習正念)
명료견정각(明了見正覺)
무상무분별(無相無分別)
시명법왕자(是名法王子)
만약 바른 생각으로 닦아 익혀
밝게 올바른 깨달음을 요달 해 보면
모양도 없고 분별도 없어서
이 이름을 법왕자라 하리로다.
오늘 이 법회에 초청되어 온 이 법사는 행림(行林)보살의 찬불게를 읊는 것으로 설법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오늘 이 법석에서는 ‘불 법 승’ 삼보(三寶)에 귀의하고 ‘계 정 혜’ 삼학(三學)을 근수하여 ‘문 사 수’ 삼혜(三慧)인 무량혜를 나투는 말씀을 드립니다. 삼혜란 무엇이냐. 우선 문혜(聞慧)이니 부처님과 제보살과 선지식의 설법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들은 법을 잊지 말고 늘 생각해야 하는 것이니 이것이 사혜(思慧)입니다. 듣고 생각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듣고 생각한 바대로 닦으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니 바로, 수혜(修慧)라 합니다. 이렇게 잘 듣고 생각하고 닦으면서 살아가는 지혜를 ‘무량혜’라 하는 것입니다.
오늘 관세음 보살님 점안의식을 봉행 했으니, 관세음보살님의 위신력으로 모두 무량가피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관세음 보살님은 중생에게 어떻게 나투어 가피를 내리시는지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선 ‘6도응화신’으로 나투어 중생의 고통을 살피시니 그 거룩한 원력에 귀의합니다. 그리고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등의 4악취와 인간 4주, 욕계 6천과 색계 7처천, 무색계 4천을 합한 25류 중생을 다 제도하시는 관세음 보살님께 귀의 합니다. 또 32가지의 온갖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보살펴 주시는 관세음보살님(32응신)과 33가지의 온갖 모습으로 변화하여 중생을 구해 주시는 관세음보살님(33화신)께도 지극한 마음으로 귀의합니다.(대종사는 이들 관세음보살님의 명호를 일일이 선창하시고 불자들에게 큰소리로 따라 호명하도록 했다.)
자, 여러분. 이제 관세음보살님의 커다란 원력과 그 가피가 여러분들께 고르게 전해 졌으리라 믿습니다. 이 인연으로 무량 가피를 받으시어 연화사 호계불교대학과 여러 불자님들이 일익번창 하시고 세계 일류의 도량을 가꾸어 나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보이는 모든 사람이 다 관세음보살님의 응신이고 화신입니다. 비구 비구니 우바이 우바새 모두가 관세음보살의 응신이고 화신입니다. 동남 동녀도 모두 관세음보살이고 천인과 용과 야차까지도 모두 관세음보살입니다. 차별 없이 모든 대상을 관세음보살로 보고 지극히 귀의하면 귀의하는 자기 스스로가 관세음보살이니, 인응신(人應身) 관세음보살인 것입니다. 32응신과 33화신이란 바로 일체의 모든 존재의 귀함을 아는 것이고 일체의 존재에 귀의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기념법회 자리에서 관세음보살에 대한 믿음과 가피의 원력이 여러분에게 드러났으니 앞으로 이 도량에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함께 부처님의 법을 공부하도록 해야겠습니다. 이렇게 법문을 듣고 생각하는 것도 수행이고 닦는 것도 수행이라 했는데, 여러분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법당으로 안내하여 공부와 인연 맺게 하는 것도 들은 법을 생각하고 행하는 일입니다. 불법에 귀의하지 않은 사람을 법당으로 데리고 오는 것도 수행이란 말입니다. 수행이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듣고 생각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그 행하는 것 가운데 전법도 포함되는 것임을 잊지 마시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에 의지해야하고 어떤 행을 해야 하는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보리도량의 보광명전에 계실 적에 선정에 들어 계시는데, 보혜 보살이 보현보살에게 여쭈었습니다. “어떤 것이 보살의 의지이며 기특한 생각이며 행이며 선지식이며....” 이렇게 보혜 보살이 200가지로 질문을 올리니까 보현 보살이 그 200가지의 질문에 각각 10가지로 답하여 무려 2000가지의 답을 말합니다. 이를 ‘보혜병사이백문(寶慧甁瀉二百問 普賢雲興二千答)’이라 합니다. 보혜 보살이 병의 물을 쏟아내듯 한꺼번에 200가지의 질문을 쏘아내니, 보현보살이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나듯 한 질문에 열 가지 씩 2000답을 했다는 말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그 첫 질문인 열 가지의 의지처를 말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선, 보리심으로 의지처럼 삼아라(菩提心爲依)하는 것이니 무상정등정각(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이란 바로 부처님의 깨달으신 그 자리입니다. 우리는 그 깨달음의 실체를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리지 않고 지극하게 의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자신의 혼자 힘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식에 의지(善知識爲依)해야 합니다. 선지식에는 세 가지 종료가 있으니 이를 3종선지식이라 해요. 여러분이 이렇게 살고 잇는데 가장 가까운 곳에 어떤 사람들이 있나요? 부모가 있고 남편이 있고 부인이 있고 자식이 있으며 여러분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함께 살며 자신을 지켜주는 사람들이 잇습니다. 이들을 외호선지식이라 합니다. 또 여러분들이 절에 다니고 불교대학에 다니면서 공부하고 수행할 때 옆에 누가 있습니까? 함께 공부하는 도반들이 잇잖습니까? 절 뿐 아니라 세상을 살면서 늘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을 동행선지식이라 합니다. 세 번째는 교수선지식인데 매순간 살아가면서 자신을 일깨워 주는 사람이 다 교수선지식입니다.
세 번째로 의지해야 할 것은 선근(善根爲依)입니다. 선근이란 바른 삶의 지혜이고 근원입니다. 몸과입과 뜻으로 짓는 온갖 죄악을 차단하는 뿌리입니다. 신(身)선근과 구(口)선근, 의(意)선근을 잘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흔들리면 성불을 할 수가 없습니다. 밖으로는 선지식을 찾아 법을 구하고 안으로는 선근을 잘 기르고 지키는 것이 수행인 겁니다.
다음으로는 바라밀로써 의지를 삼으라(波羅密爲依)고 합니다. 인간세상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이 세상은 고해입니다. 진정한 자유와 해탈 열반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생사고해를 건너야 합니다. 그러자면 스스로를 이롭게 하고 남을 이롭게 하는 수행을 해야 합니다. 이를 가르치는 덕목이 바로 십바라밀입니다.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여섯 바라밀은 자신을 이롭게 하는 실천덕목이고 방편 원 력 지의 네 가지 바라밀은 타인을 이롭게 하는 실천의 길입니다. 우리는 이 바라밀의 실천덕목을 지킴으로써 무상정등정각의 보리심을 지키고 선지식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대종사는 열 가지의 바라밀 항목을 모두 선창하고 불자들에게 큰 소리로 따라 외우도록 했다.)
다섯 번째로 일체법으로써 의지를 삼으라(一切法爲依)고 했습니다. 세간의 ‘유루의 인연법’ 출세간의 ‘무루의 근본법’ 부사의(不思意)의 미묘법을 통틀어 일체법이라 합니다. 이 모든 법을 의지해 수행함으로써 구경에는 욕계색계 무색계를 다 떠나 진리의 자리로 들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대원(大願)에 의지할 것을 가르치십니다. 서원이 없이는 성취도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처음 불교에 입문할 때 무엇을 서원 했습니까? 서원을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매진하는 것이 보리를 증장하는 인연을 이어가는 길입니다.
일곱 번째는 제행(諸行)에 의지라는 것인데, 제행이란 차별을 두지 않고 두루 받들어 행하는 것입니다. 수행자에게 있어 제행이란, 참선으로 의단독로하고 염불로 삼매를 증득하고 간경으로 지혜를 증장하며 주력으로 업장을 소멸하고 불사로 복덕을 구족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두루두루 행하는데 정성을 바쳐보시면 반드시 좋은 과보를 얻을 것입니다.
여덟 번째는 일체보살에 의지하라(一切菩薩爲依)는 것입니다. 중생이 중생끼리 의지하면 성불할 수 있겠습니까? 안됩니다. 성불할 수 없습니다. 그릇된 소견만 더 키우게 됩니다. 반드시 일체제불과 보살에 의지해야 합니다.
다음 아홉 번째 의지처가 제불에 공양하는 것으로 의지처를 삼으라(諸佛供養爲依)는 것입니다. 모든 보살에게 의지하고 모든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것으로 의지처를 삼으면 신심이 청정하여 지혜가 열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홉 가지의 의지할 바를 잘 알아서 성실하게 지키는 것이 바로 일체여래를 의지하는 길(一切如來依)입니다. 이렇게 보현보살이 열 가지 의지처를 설했으니, 여러분들도 이 열 가지의 뜻을 잘 새기시어 정진하는데 밑거름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도문 스님은...
백용성(白龍城) 조사의 10가지 유훈실현에 앞장서고 있는 도문스님은 1935년 전북 남원에서 출생했다. 1946년 장성 백양사에서 동헌스님를 은사로 득도하여, 만암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60년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스님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이후 경주 분황사, 공주 마곡사, 장성 백양사, 정읍 내장사, 서울 대각사 주지를 역임했다. 현재 장수 죽림정사, 경주 천룡사 조실이다. 국내와 인도의 부처님 성지 복원에 힘스고 있으며 <불교인의 365일> 등의 책을 펴냈다. 무엇보다 스승이신 용성 스님에 현토한 <금강경>을 140만권이나 법보시로 보급하는 기록을 세웠다. 최근 조계종 최고의 법계인 대종사 품계를 받았다.
(임현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