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림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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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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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0-02-24 조회8,328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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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여러 가지 마음을 일으키게 된다. 욕망이나 분노, 어리석음, 질투, 아만 등 인간의 무지는 숙명적으로 삶을 관통한다고 할 수 있다. 수행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여러 가지 방편이다. 탄생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탐(貪) 진(瞋) 치(癡) 삼독심으로 오염되고 상처받은 몸과

마음을 본래의 맑고 밝은 상태로 되돌리고자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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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와 명예, 권력을 소유하기 위한 끝없는 욕망, 그 욕망이 충족되지 않을 때 일어 나는 만이나 화. 이 모든 것들이 어리석고 무지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인간은 이러한 삼독심(三毒心)을 바탕으로 수많은 경험, 기억, 생각, 관념, 가치관 등의 쓰레기를 몸과 마음에 쌓아온다. 그 결과 인간의 심신은 어느덧 답답하게 막 히거나 탁한 흙탕물 같은 상태가 되어간다. 그러한 것들을 바라보고, 비워내고, 닦아주고, 보듬어 줌으로써 ‘나라고 하는 존재’의 본래 모습을 되찾고자하는 일, 그것이 바로 수행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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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궁극적 목적은 깨달음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의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수행은 그것에 대한 깊은 탐구이면서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어떤 상황, 어떤 대상에도 걸리지 않고 자유로운 부처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행의 궁극인 깨달음과 우리가 일상에서 찾고자 하는 행복이나 마음의 평화는 따로 분리할 수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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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어떤 것에도 걸림이 없는 대자유라는 뿌리에서 자란 가지들이다. 바로 그 대자유가 부처이고 해탈이며 큰 깨달음이다. 인간은 원래 그런 대자유인이었다. 본래 부처라고 한다. 그런데 우주와 인생에 깃들어 있는 궁극적인 이치를 밝게 깨달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현실에 급급하고 얽매여서 온갖 업을 지으며 헛되이 윤회를 한다. 이것이 무명(無明)이다. 진리에 대해 무지한 상태라는 뜻이다.

인간이 무명에 빠져드는 이유는 바로 ‘나’라는 아상과 그로 인한 번뇌 때문이다.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나‘라는 생각은 인간의 필연적 조건이 되어서 삶 전반에 따라다닌다. 말 못하는 갓난아이도 ‘나’의 엄마를 찾는다. 그 아이는 차츰 성장하면서 나의 가족, 나의 성격, 나의 자존심, 나의 재산을 끌어안게 된다. 이른바 아상(我相)이 생기는 것이다. 만 명의 사람이 있다면 만 명이 모두 다른 아상을 가지고 산다. 부모가 다르고 형제가 다르며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한 아상은 곧 수많은 번뇌를 만들어낸다. 번뇌 중에서 가장 뿌리 깊은 것이 탐진치 삼독심이며,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지 못하게 하는 대표적인 독약과 같은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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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은 바로 이러한 아상과 번뇌를 소멸해가는 몸과 마음의 작업이기도 하다. 생각을 소멸하고 견해를 소멸하고 의도를 소멸하고 욕심을 소멸하고 감정을 소멸하는 일이다. 수많은 번뇌를 소멸함으로써 여기에 본래 있었던 부처와 평화, 자비, 행복을 찾아가는 일이다. 원래의 뿌리를 찾아가는 일인 것이다. 내안에 본래 있었던 평화와 자비, 행복을 찾아가는 수행자의 몸과 마음은 어린아이와 같은 유연성과 면역력이 생성된다고 한다. 이는 몸과 마음의 찌꺼기들이 떨어져나감으로써 생기는 필연적 현상이다. 만성 통증, 두통, 신경증, 우울증, 고혈압, 심장병 등의 완화나 치료효과는 수행의 응답이기도 하다. 드문 경우지만, 수행을 했다하여 수행 경력을 훈장처럼 뻐기는 경우가 있다. 드러나지 않는 속마음에 그칠지라도 그것은 ‘나’라는 상이 분명한 수행병 증세이다. 이 병이야말로 세상의 어떤 약이나 가르침으로도 치유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므로 한시도 쉼 없이 자신이 몸과 마음을 살펴서 ‘나’라는 마구니의 꼬임에 빠지지 않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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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알려진 수행의 종류는 십수 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많은 불자들이 활용하는 수행법을 열거하면 , 염불 수행, 주력 수행, 절 수행, 독경, 간경 수행, 사경 수행, 사불 수행, 지관수행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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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을 염함으로써 내 마음 또한 부처님처럼 바뀌게 되기를 바라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염불수행은 아미타부처님의 육자 명호를 외우면서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이 요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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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문장이나 음절을 입으로 계속 염속하는 수행법을 말한다. 진언이라고 도 하는 주력의 언어는 일반적인 의사소통의 말이 아니라 초월적이고 신성한 의미와 능력을 갖고 있다고 본다. 수행자는 이러한 언어를 반복적으로 염송함 으로써 자신의 업장을 털어내고 극락왕생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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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수행법이다. 절은 자신의 신체를 낮춰서 상대를 높이는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절 수행은 두 무릎과 두 팔꿈치와 이마 등 다섯 부분을 땅에 붙여 온몸으로 예배하면서 양손으로 상대방의 발을 받든다는 의미에서 오체투지
(五體投地)라고도 한다. 절이 수행이 될 수 있는 것은 탐진치 삼독심을 내리면서 아상이 없는
무아를 성취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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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경을 읽거나 보는 공부’이다. 이 독경 내지 간경의 대표적 대상으로는 경(經), 율(律), 논(論) 삼장이 이에 해당된다. 부처님 말씀을 수지독송하는 독경, 간경은 승단의 일과 중에 하나로 자리잡혀 있다. 특히 새벽녘의 독경은 부처님 당시에서부터 재가신자들의 일과에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사경(寫經) 수행에서 사(寫)의 의미는 “베끼다, 옮겨놓다, 본뜨다”이다. 즉, 사경은 부처님 말씀을 옮겨 쓰는 것을 의미한다. 사경 또한 경율논 삼장을 중심으로 옮겨 쓴다. 이는 진리를 한자한자 정성스레 베껴쓰면서 부처님의 생을 닮아감으로써 성불에 이르고자 하는 데 근본 목적이 있다. 사경하면서 부처님의 말씀을 떠올리고 이해하면서 그것을 내면화하면 부처님과 같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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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을 그려내거나 새기는 행위를 함으로써 부처님의 말씀과 마음을 온전히 체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사불은 선수행의 일종인 관상법(觀想法)이라고할 수 있다. 사경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깊은 선정에 들어 부처님에 대한 충분한 관상을 한 후 행위에 들어가는 것이 순서이다. 사불은 사경과 함께 어린아이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불법을 자연스레 체득할 수 있는 쉽고 흥미로운 마음 공부법이기도 하다. 특히,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교리 공부가 시각적인 효과로 드러남으로써 흥미유발은 물론 정신적 안정을 이끌어 내는 데에도 큰 효과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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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지관(止觀) 수행을 통해서 부처님의 깨달음에 다가갔다고 볼 수 있다. 지관 수행법에서 지(止 )는 선정 바라밀을 뜻한다. 몸과 마음을 그치게 함으로써 번뇌를 가라앉히는 수행법이다. 관(觀)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늘 관찰함으로써 지혜를 얻어가는 마음공부이다. 말하자면 지관은 선정과 지혜를 얻는 공부로서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통하여 깨달음 에 이르는 것이다. 번뇌의 장애 없는 선정은 지혜의 도움 없이 이루어지기 어렵고 선정의 도움 없는 지혜는 머리로만 하는 수행이 되기 쉽다. 따라서, 지관 수행은 자신에 대한 지극한 자각과 깊은 선정을 함께하는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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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버는 것도, 공부를 하는 것도, 사랑을 하는 것도 그 목적은 ‘행복’이다. 불교 수행의 목적 또한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수많은 번뇌 중에서 탐 · 진 · 치 삼독을 가장 근원적인 독(毒)으로 보고 그것을 소멸시킴으로써 열반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 속에 수행의 기본 원리가 자리 잡고 있다. 계(戒) · 정(定) ·혜(慧) 삼학이 그것이다. 불교 수행의 모든 것은 바로 이 삼학 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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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율이란 일상에서 지켜야 할 도덕규범들로서 오계(五戒)를 비롯한 십선계(十善戒) 등을 뜻한다.
정은 선정(禪定)을 뜻하는 말로서 좌선과 같은 정신 집중을 중심으로 한 수행을 일컫는다. 말하자면 호흡과 자세를 가다듬고 의식을 한곳에 통일 시키는 수행으로서 삼매(三昧)라고도 한다. 선정은 산란한 마음이나 분노, 들뜸 따위를 잘 제어하여 지혜의 터전을 마련하는 수행이다.
지혜는 사물의 이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기르는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몸이나 감각은 덧없고 괴로우며 실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것이 마치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착각하면서 살게 마련이다. 지혜는 바로 이러한 착각을 여실히 관찰하고 연기의 이치를 깊이 탐구하는 것이다. 지혜 수행을 통해 수행자는 진리를 통찰하게 되어 마음 속에 아무런 걸림 없는 열반을 성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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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원이 있는 사람한테는 천만 원이 행복이다. 신용불량자에게는 채무청산이 행복이다. 그리하여 백만 원 있는 사람이 천만 원을 벌기 위하여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 그는 천만 원을 벌 때까지 불행하다. 자신이 움켜쥐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 불행의 시작이고 놓지 못하는 것이 불행의 과정이며 그로인해 자신과 주변이 힘들어지는 것이 불행의 드러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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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은 바로 이 사실을 스스로 알고, 깨닫고, 놓아주는 것이다. 부처님은 인간의 집착과 욕망에 대해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해로울 뿐만 아니라 지혜를 멈추게 하고 깨달음을 성취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계 정 혜 삼학의 수행은 이 집착과 욕망의 본 성품을 바로 보게 하여 그것의 본래 없음을 깨달아 깨우치는 수행법인 것이다.

부처님은《열반경》에서도 ‘모든 중생들에게는 제각기 불성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누구에게나 부처의 성품이 있기 때문에 수행을 통해 이상적인 경지, 즉 최고의 행복인 열반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자신이 하는 행위와 생각, 느낌, 욕망 따위를 순간순간 자각하여 내리는 것이 수행이고 집착의 대상을 내려놓는 것이 수행의 결과이다. 이 작은 결과들, 즉 수행의 힘을 매사에 사용하여 탐 진 치 삼독심을 여의고 부처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임으로서 일상의 행복을 이루고 깨달음의 길을 걷는 것이 수행의 공덕이다. 수행의 공덕은 바로 삶의 여유와 행복감, 지혜와 자비심으로 그 실상을 드러낸다. 그로인해 자신은 물론 주변의 인연들이 모두 밝게 피어날 것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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